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/역사 (문단 편집) === 주간 연속 TVA 등장 === '''당시 최고 인기만화가 [[데즈카 오사무]]는''' 1961년 6월 도쿄 [[네리마구]] 후지미다이 사저에 사카모토 유사쿠, 야마모토 에이이치 등과 함께 '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 동화부'를 만들고 이듬해 '[[무시 프로덕션]]'으로 이름을 바꿨다. 그리고 자신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최초의 20분짜리 매주 주간 연속 [[TVA]] 《[[철완 아톰]]》을 선보였다. [[1963년]] 1월 1일부터 [[1966년]]까지 [[후지 테레비]]에서 방영되어 최고 [[시청률]] 40% 이상이 나오는 인기 프로가 되었다. 아톰 이전에도 수입애니 《[[뽀빠이]]》(1959년부터 방송)나 《[[톰과 제리]]》(1964)가 방송되었고, 일본산 중에 《오토기 만화 캘린더(1961)[* 오토기 프로덕션 제작. 해당 제작사는 신문만화 <후쿠쨩> 작가 요코야마 유이치가 세웠으며, 데즈카의 수하 야마모토 에이이치도 배출됐다.]》 등 짧은 에피소드 위주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송하고 있었지만 아톰만큼의 인기는 없었고, 당시에도 TVA 제작을 검토하는 스태프들도 있었으나 비용 문제 때문에 주저했다. 기존 토에이 동화와 같은 제작방식으로 만든다면 1편당 스태프 수 100명, 제작기간 6개월에 최소 예산 3천만엔으로, 당시 30분짜리 프로그램 제작비 50~60만엔보다 더 비쌌다. 설령 구미권처럼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써서 24콤마를 8콤마로 줄여서 제작해도 600만 엔이 든다. 본래라면 토에이처럼 거대 기업이 거대 자본을 투자해서 [[디즈니]]처럼 많은 제작비를 들인 풀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라고 생각했는데, [[무시 프로덕션]]이 만든 '테레비 망가'는 리미티드 기법이라 흑백화면에 움직임도 없고, 입만 벙긋벙긋 하고 몇 번이고 똑같은 장면을 재활용([[뱅크신]] 시스템)하는데도 당시 최고 인기만화 원작의 애니화라서 그 스토리의 재미로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. 방학이 되고 극장에다 용돈을 갖다바치고 겨우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매주 공짜로 볼 수 있는데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. [[철완 아톰]]은 캐릭터를 이용한 여러 상품이 만들어지고, 캐릭터 사용료만으로도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였다. 일본 방송국은 수요가 폭발하는 '테레비 망가'를 제공해 줄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찾았고, 각 방송국들은 아톰의 성공을 보고 우후죽순처럼 창립한 신생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와 전속 관계를 맺고,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시작했다. TCJ([[에이켄 스튜디오|에이켄]]), [[타츠노코 프로덕션]], [[TMS 엔터테인먼트|도쿄 무비]], [[닛폰 애니메이션|즈이요 엔터프라이즈]], A 프로덕션([[신에이 동화]]), [[나크(스튜디오)|나크]] 등이 이 무렵 새로 형성된 TV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다. 1963년에 로봇물 장르 《[[철인 28호]]》, 《[[에이트맨]]》, 65년에는 《[[오바케의 Q타로]]》(첫 개그 애니메이션), 66년에는 《[[요술공주 샐리]]》(첫 소녀 대상이자 첫 [[마법소녀물]]), 스포콘(스포츠 [[근성물]]) 장르인 《[[거인의 별]]》(68), 《[[어택 넘버 원(アタックNo.1)]]》(69),《[[내일의 죠/애니메이션#s-1|내일의 죠]]》(71), 《[[에이스를 노려라!]]》(73), [[요괴]] 호러 장르인 《[[게게게의 키타로]]》(68), 《[[요괴인간 벰]]》(68), [[닌자]] 무협 장르인 [[시라토 산페이]] 원작 《[[사스케]]》(68), 《[[닌풍 카무이 전]]》(69), 하이틴·성인 대상의 《선인부락(仙人部落)》(63),《[[루팡 3세]]》(71), [[시대극]] 형사물로 [[이시노모리 쇼타로]] 원작의 《사부와 이치의 체포조(佐武と市捕物控)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JmLe0HJs9i4|OP&ED]]》(68), 가족[[일상물]]인 《[[사자에상]]》 (69)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만들어졌다. <내일의 죠>와 <닌풍 카무이 전>은 1968년 야스다 강당 사건 등 당시 과격한 학생운동이 성행하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'아웃사이더 열풍'을 불러일으켰다. 일본 애니메이션 평론가는 이 시기 1963년부터 1968년까지를 제1차 아니메 붐으로 분류하기도 한다. 60년대 중반부터는 《[[울트라맨]]》을 시작으로 [[가면라이더 시리즈]]로 이어지는 [[특촬]] 드라마 '[[괴수]]' '변신' 붐이 일면서 애니메이션 인기는 한 풀 꺾였다. 그리고 [[무시 프로덕션]]은 방송국에 낮은 제작비로 납품하기로 하고, 다른 애니 제작사에도 그 금액 이상은 주지 말라고 해서, 무시 프로의 저가격 [[덤핑]] 애니메이션 제작비가 TV 방송업계의 기준이 되는 바람에 가뜩이나 영세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적은 제작비로 경영에 힘겨움을 겪어야 했다. 도쿄 무비처럼 한 작품을 만들고 도산한 경우도 발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